내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

내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
그로스스크랩 1편 '내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많은 초기 투자사와 액셀러레이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조직에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홍보/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있죠. 이직 주기가 짧은 업계 특성상 한 기관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변화가 잦은 환경에서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본인만의 가치를 만들며 단단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매쉬업엔젤스의 김민주 파트장을 만났습니다.

처음 업계 동료로 만났지만, 지금은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사실 growthscrap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 하죠. 그가 가진 특유의 편안함과 따뜻함은 이번 만남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이야기 도중 눈물이 나올 만큼 위로가 되는 순간도 참 많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가 그를 존경하고 애정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분도 조금은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growthscraper #1 - 매쉬업엔젤스 김민주 파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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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1: “나의 업무가 중요하다고 스스로 계속 생각하고 인정해야 지속할 수 있다고 봐요”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매쉬업엔젤스에서 투자 포트폴리오사의 홍보(PR) 전략을 함께 고민하고 성장 지원 프로그램을 기획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합류한 지 8년 정도 되었어요.

2022 매쉬업 패밀리 DAY 행사 (사진=김민주 제공)

보통 '일'을 할 때 어디에서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매쉬업엔젤스에서 일하며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스타트업과 투자에 대한 업무를 매쉬업엔젤스에서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파트너와 심사역 분들을 보면 진심으로 포트폴리오 기업들을 위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이런 마음과 태도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투자사라고 자부해요. 저도 처음부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업계를 접하고 일을 배워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그런 태도를 갖게 되었어요. 일을 하다 보면 주어진 일을 어떤 태도로 하는지가 제게는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동료들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있어요.

요즘 가장 집중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학교와 협업해 진행하는 행사들에 집중하고 있어요. 학교는 학기제로 움직이다 보니 이번 학기에 진행한 행사에서 어떤 부분을 개선해 운영할지, 다음 학기에는 어떤 학교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올해 전반적으로 창업 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투자 자금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학생들을 포함해 예비 창업가들의 고민이 더 깊어져 창업을 주춤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꼭 창업이 아니더라도 스타트업보다 더 안정적인 기업으로 취업을 희망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계속 투자하는 투자사가 있고, 성장하는 기업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결국 행사의 목적은 창업과 스타트업에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 가장 커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스타트업 업계 특성상,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을 경험하셨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항상 포트폴리오사 대상으로 하는 행사가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행사를 기획할 때부터 포트폴리오사에 어떤 게 필요한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요. 이후에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늘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매번 행사가 끝나면 힘들어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 매쉬업엔젤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한국벤처투자가 협업해 진행한 투자유치 가이드북 제작 작업도 생각나요. 당시 외부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면서 소통하는 것이나 일하는 방식을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스타트업 씬에서 일하면 외부 파트너들, 외부 동료들에게 배우는 점이 정말 많아요. 당시에 그 책을 만드는 과정이 길고 쉽지 않았지만, 다 같이 지치지 않고 독려하면서 끝까지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낸 성취감이 있어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스타트업 업계에서 유독 외부의 주목을 받는 직무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잖아요. 그만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순간도 종종 찾아오는 것 같아요.

저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가 많죠. 업계 특성상 주목받는 직무들이 있어요. 이에 반해 저의 업무는 누군가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직무일 수 있고, 상대적으로 다른 직무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지는 직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건 진짜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나의 업무가 중요하다고 스스로 계속 생각하고 인정해야 지속할 수 있다고 봐요.

내가 하는 일이 모두의 주목을 받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바라는 점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직무의 사람들로 인해 스타트업 생태계가 함께 성장하고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지했으면 해요. 잘 모를수록 더 어렵게, 더 조심히 다가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서로를 더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중요하지 않은 일이나 직무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인터뷰 현장 사진 ⓒgrowthscrap

일을 하면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지점이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서 투자하는 것에 조금 회의를 느낀 적도 있었어요. 기술은 계속해 발전할 텐데 지금 투자하는 것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바리스타 로봇 시연 행사에 가게 됐어요. 친구는 다리가 불편해서 평소 목발을 짚고 다니는데, 그날 희망이 생겼다고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의아했어요. 외식업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다리가 불편하니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해왔었대요. 그런데 로봇들을 보면서 외식업에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데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그동안 저는 기술의 개발을 저의 관점에서만 생각해 왔던 것 같아요.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가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필요한 것일 수도 있는데 제가 그걸 놓치고 있었던 거죠. 그날 이후, 새로운 서비스를 접할 때 좋은 부분을 더 먼저 발견하고 가능성을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그날의 경험이 일에서뿐만 아니라 제 삶 전체에서도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친구를 통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알 수 있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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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2: “오히려 내가 아예 모르는 일을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매쉬업엔젤스 합류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대학 때 영상 관련 공부를 했고, 졸업 후 공연과 영화 업계에서 4~5년 정도 일을 했어요.

먼저 공연 쪽에서는 공연 PD의 업무를 보조하는 컴퍼니 매니저로 일했어요. 공연의 기획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요. 예를 들면 공연 연습을 할 때 스태프, 배우, 제작사의 의사결정을 돕는 역할부터 스케쥴을 조정하고 연습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공간을 셋팅하는 일까지 모두 컴퍼니 매니저가 담당해요.

처음에는 잡무만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한 적도 있었는데,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A부터 Z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직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특히 저는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걸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는데요. 무대에서의 공연이 정해진 약속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거라면 연습실에서의 공연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좋은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거라서 훨씬 좋았어요. 배우도, 연출도, 음악도, 작가도 연습 과정 중에 실시간으로 수정하고 시도하는데 그 과정들을 보다 보면 각자의 역량이 오롯이 보이는 거죠. 그게 굉장히 좋았어요.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볼 수 없었을 거예요.

공연 현장에는 정말 변수가 많아요. 갑자기 돌발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조명이 안 나올 수도 있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요. 그럴 때마다 PD에게 전달하고 지시에 따라 수행하는 역할을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컴퍼니 매니저 이후에는 영화 현장 스태프로 1년 반 정도 일했어요. 영화를 전공했으니 관련 일을 한번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대책 없이 뛰어들었던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몰라서 오히려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고 저에게는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모든 게 다 새로웠고 신기한 경험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영화 일을 할 때는 연출부 쪽에서 스크립터라는 역할을 했어요. 스크립터는 촬영하는 동안 NG컷과 OK컷을 기록하는 일을 해요. 편집자가 촬영 현장을 직접 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 씬에서 어떤 장면이 좋았고 어떤 이유로 NG가 났고 그런 세부적인 사항을 모두 기록해서 전달해요. 그럼, 그 내용을 보면서 편집하는 거죠. 당시에 일이 너무 재밌고 좋아서 정말 열심히 했었어요. 게다가 함께 일했던 감독님을 비롯해 연출부 스태프들이 모두 선하고 멋진 사람들이라 육체적으로 힘들고 지치더라도 정신적으로 회복하고 채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현장 스태프로 일하던 당시 촬영 현장 (사진=김민주 제공)

공연, 영화 쪽에서 일을 해오다가 스타트업 업계라는 완전한 새로운 분야로 옮기셨어요. 당시에는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영화 일은 즐겁고 재밌었지만,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한 영화를 촬영하면 보통 6~7개월간 일하고 이후 편집 작업을 거쳐 상영되는 구조에요. 그래서 촬영이 끝나는 시기가 맞아야 이어서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신입이다 보니 함께한 감독이나 조감독이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지 않으면 다음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매번 구직하는 과정이 힘들었고 특정한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으면 영화 업계에서 오래 일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그만두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1년 정도 다른 일을 하던 시기에 스스로 투명 인간처럼 느꼈던 것 같아요. 저는 일 자체가 나를 증명한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족, 친구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지냈던 시기이기도 해서 한편으로는 굉장히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우연히 그 시기에 가족 결혼식이 있어서 하와이에 가게 됐어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시기도 아니었는데 그냥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떠났죠. 거기서 매쉬업엔젤스 최윤경 파트너를 처음 만났어요. 당시 매쉬업엔젤스에서 커뮤니티 매니저를 뽑고 있었는데 저를 좋게 봐주시고 지원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셔서 합류하게 됐어요.

이전에 했던 일들은 너무 잘 알고 좋아했던 분야라서 직업으로 선택했던 건데 때로는 그 지점이 저를 힘들게 하기도 했어요. 좋아하는 만큼 기대하게 됐고 그만큼 실망하게 된 거죠. 그리고 더 뛰어넘도록 잘 해낼 자신감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반대로 이번에는 오히려 내가 아예 모르는 일을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일하면서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한 자신감을 가졌죠. 그게 오히려 지금까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이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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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3: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과거에도 지금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일을 잘하는 사람'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생겼을 것 같아요.

꾸준히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이요.

생각보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일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요. 더 나아가 일을 꾸준히 하면서 재밌게 하는 사람은 더 희소한 것 같아요. 저는 두 분(인터뷰어)을 볼 때도 매번 재미를 찾아서 일하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어요. 그래서 안 되는 것도 되게끔 하는 것, 설사 안 되더라도 괜찮다고 느끼고 다음에 잘하려 하는 긍정적인 사고가 좋아 보였어요. 일할 때 저도 저렇게 계속 밀어붙이는 힘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쉬업 패밀리 DAY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민주 제공)

곁에 두고 싶은 동료가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요?

요란하지 않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요. 그런 사람이 앞서 말한 꾸준히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고요. 일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느는 것 같아요. 그런데 꾸준히 할 수 있는지는 그 사람의 또 다른 능력인 것 같아요.

요즘 일하면서 많이 느끼는 점인데,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과 일할 때 시너지가 더 나는 것 같아요. 부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모두가 그렇겠지만 저는 유난히 긍정적인 태도로 진취적인 사람과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일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는 거잖아요. 서로 좋은 관계, 시너지를 내기 위해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요.

반대로 동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기준과 만족도는 개인마다 다를 것 같거든요.

특히 투자사에서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매쉬업엔젤스의 김민주를 떠올리면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문구 중 ‘옳음과 친절을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선택하라’는 말이 있어요. 저는 이 문구를 인생관이자 가치로 여기며 살고 있어요. 친절함을 단순히 태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인간 대 인간으로 대했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을 친절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새로운 도전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나요?

저는 스스로를 낯선 곳에 두는 걸 좋아해요. 여행할 때도 아무 정보 없이 혼자 낯선 곳으로 가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낯설게 보이는 것들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잖아요. 저는 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스타트업 업계에서 오래 일해왔고 이제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점인 것 같아요.

만약 언젠가 이직하게 된다면 다른 산업군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지혜를 배워가는 걸 정말 좋아해요. 다양한 사람과 함께하는 경험을 통해 삶의 지혜가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