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Scrap4: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업무 외적으로 새롭게 시작하거나 흥미를 갖게 된 일이 있나요?
한동안 채식을 했던 적이 있어요. 채소를 활용해 더 다양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보다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s)'이라는 요리법을 알게 됐어요.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요리법으로 요리의 재료가 되는 채소를 버리는 부분 없이 뿌리부터 전체를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주로 제철 채소를 이용해 온전히 섭취할 방법으로 음식을 만들어요.
1년 정도 클래스를 꾸준히 들었어요. 계절마다 제철인 채소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새로운 방식으로 건강하고 색다른 음식을 만들 수 있어 재밌었어요.
우리가 먹는 음식이 결국에는 나를 만드는 거잖아요.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를 가지려면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건강한 요리를 배워 실생활에 많이 적용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양파덮밥은 양파 말고 아무것도 들어가는 게 없어요. 햇양파를 굽고 간장으로 졸여서 현미밥과 같이 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놀랐어요. 소스 자체가 진짜 우리에게 익숙한 맛이거든요. 특히 햇양파가 나오는 5월에 먹는 걸 추천해요.
계절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된장국을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저는 본가에서 된장을 받아먹는데, 여름에는 토마토를 된장국에 넣어서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새콤한 토마토가 고소한 된장이랑 어우러지죠. 무더운 날씨 때문에 입맛이 없을 때 추천하는 음식이에요.
사진에도 취미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배우 배두나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당시 <두나's 도쿄놀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필름 카메라로 도쿄의 장면과 일상을 담은 사진 에세이를 보면서 저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20살에 첫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필름 카메라를 마련했어요. 기계를 잘 바꾸지 않는 편이라, 아직도 그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어요. 완벽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익숙한 도구로 일상의 장면을 찍는 게 좋더라고요.
미얀마 여행을 하면서 담았던 사진입니다. 날 것 그대로의 풍경도 좋았지만, 저는 이곳 사람들이 전해준 왠지 모를 따뜻한 기운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 기억의 일부를 전해드립니다.
사진 작업을 기록해 둔 인스타그램을 봤어요. 골목길, 시장, 이웃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피사체가 많더라고요.
말씀하신 것들이 제가 좋아하는 피사체에요. 다른 사람의 작업물에 비해 제 작품은 너무 평범하고 심심한 느낌이라 고민이 되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저는 편안한 상태에서 사진 찍는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가까이 있는 동네나 사람들처럼 일상과 맞닿아 있는 것들을 많이 담게 되었어요.
사진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자주 생각하는 편이에요. 아직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사진을 통해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걸 담고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사진 자체가 저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어쩌면 사진이 심심하다는 건 제가 심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요.
엄청 자극적이거나 신선함을 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냥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사진에 나타나기도 하고 그런 사진을 찍기 때문에 사진이 저로 보인다고 생각해요.
2018, 2019년도에 마음이 선한 친구들과 함께 토종 씨앗을 조사하러 다니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잊히고 지켜야 할 것들을 만났던 순간을 담은 사진이라 생각하는데요, 그때의 풍경 일부를 공유합니다.
사진 촬영을 넘어 인화도 직접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마음으로 작업하는지 궁금합니다.
주로 흑백사진을 촬영하고 암실에서 직접 현상과 인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가 암실에 가는 건 명상과 비슷한 것 같아요. 작업에 집중하고 그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좋은 경험인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봐야 하잖아요. 자연스레 머릿속에 많은 생각도 생기고요. 그런 걸 단절시킬 수 있는 공간이 제게는 암실이에요. 명상하는 것처럼 생각을 덜어내고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다 보니 암실에서 작업하는 행위 자체가 큰 힐링이 됩니다.
사진찍는 취미에 소소한 목표도 있을까요?
당장은 결과물보다 그냥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전시라고 이야기했었어요. 그래야 동기부여가 되고 실천하게 되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전시를 목표하기보다는 제가 무엇을 찍고 있는지 먼저 생각하려고 해요. 사진이라는 작업 자체를 통해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정리해 보고 싶어요. 정리가 잘 되면 그때 전시나 콘텐츠 등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Scrap5: “연봉을 높이고 희소성을 만드는 게 성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롤모델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평소 롤모델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롤모델이 ‘어떤 한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의미라면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대신 ‘여러 사람의 좋은 점을 닮고 싶다'는 관점에서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저의 롤모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가진 장점을 많이 보려고 해요.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면 좋은 점이 진짜 많이 보여요. 그런데 대부분 안 좋은 점을 먼저 보고 그걸 더 확대해서 보려고 하잖아요. 되게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항상 좋은 점을 많이 발견하고, 그런 좋은 점을 닮으려고 노력해요.
물론 때로는 보기도 싫은 사람을 만나게 될 때도 있죠. 그럴 때면 잠깐 멈춰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돌아보면 생각보다 별게 아닐 때가 많아요. 살면서 사람 때문에 괴롭고 힘들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 사람을 왜 미워하는지 생각해 보면 확실히 부정적인 생각이 줄어들어요.
행복이 너무 거창하게 느껴져서 평소에 행복감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 행복감을 느낀 순간이 궁금합니다.
5월에 고향에 다녀왔어요. 집 주변 아카시아 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더라고요.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앉아있는데 참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행복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이를테면 날씨가 좋을 때, 계절이 푸릇하게 보일 때처럼 사소한 것에서 행복한 감정이 문득 떠오르는 편입니다.
일을 할 때는 계획한 일을 무사히 마쳤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 같아요. 여기에 피드백이 좋으면 더 행복해지는 것 같고요.
살면서 매 순간 고민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현재 직면한 고민이 있나요?
다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물론 지금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선택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을 돕는 사람이 될까 생각해 보고 있어요. 업무적으로는 커뮤니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누군가를 서포팅하는 업무가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연봉을 높이고, 희소성을 만드는 게 성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에게는 얼마나 더 나은 사람이 되느냐가 성장의 포인트에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더 나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성장이라는 순간을 더 나은 사람이 될 때라고 말씀하셨어요. 보통 어떤 때 그런 생각이 드나요?
과거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 상황을 이해하게 됐을 때요. 어렸을 땐 정말 이해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고 경력이나 경험이 쌓이면서 이해되는 순간에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더 편협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계속 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매몰되지 않고 시선을 계속 열어두면서요.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되었던 콘텐츠가 있나요?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특히 한국 소설책을 좋아하는데요. 책을 통해 위로받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해요. 텍스트를 읽으면 어지러운 생각이 정리되고 걱정과 불안도 사라지거든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나 단편집을 읽으면 감정 해소가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작가의 세계관을 접할 때 공감과 위로를 받아요. 내가 가진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대해서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공감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잖아요. 그럴 때 소설 속 작가의 세계관을 통해 위로받고 공감하다 보면 그 자체로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렇게 힘이 생기면 결국 다른 것도 시도할 수 있고, 지금 하는 일도 지속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김연수 작가를 좋아해요. <청춘의 문장들>과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책이 기억에 남는데요. 작가 에세이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일상에서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 알 수 있게 되어 좋은 것 같아요.
몇 년 전, 아버지는 단풍빛으로 물든 그 길을 걸으며, 나뭇잎은 저렇게 졌다가도 봄이면 다시 돋는데 한 번 떠난 사람은 왜 다시 오지 않는가, 라는 내용의 일본 시를 읊조리셨다. 스스로 읊은 시처럼 아버지는 한 번 떠나 영영 다시 오시지 않는다. 그리고 그 빈자리로 호수공원의 단풍이 해마다 어김 없이 찾아온다. 그제야 나는 내가 사는 이 땅의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한 번 떠나고 다시 오지 않는 어떤 이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되리라는 걸 깨닫는다. 언젠가 어떤 이와 나란히 걸으며 바라보던 풍경,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풍경,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이고 우리가 보게 될, 그리고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겨울과 봄과 여름과 가을이라는 걸.
오랫동안 단편소설을 쓰지 않았다. 쓰고 싶은 게 없을 때는 쓸 수 없다. 그러다가 2020년이 되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휩쓸고 나자 뭔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어떤 이야기가 쓰고 싶었느냐고 묻는다면 메리 올리버의 다른 시「골든로드」의 한 구절을 들려줘야겠다. 그는 "빛으로 가득 찬 이 몸들보다 나은 곳이 있을까?"라고 썼다. 이 경이로운 문장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나는 잘 알게 됐다. 직전의 시구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삶이라는 힘든 노동은 어두운 시간들로 가득하지 않아?" '어두운 시간'이 '빛으로 가득 찬 이 몸'을 만든다. 지금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언젠가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
2022년 가을
김연수
삶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하고 있나요?
지속적인 관심을 두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어요. 사람이나 환경 등 다양한 부분에서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예민한 감각으로 세상에 관심을 두는 게 살면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아는 만큼 불편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모르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아요.
힘들고 불편해도 계속 자각하고 개선이 필요한 걸 생각하며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이라면 사유하는 삶을 사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고요. 사람이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정말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잖아요.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면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하거나 행동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럼,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남이 만든 가치관에 휘말려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것 같아요.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삶을 돌아봤을 때 딱 한 장면을 스크랩한다면, 어떤 장면을 남기고 싶나요? 제목과 배경음악도 골라주세요.
영화 업계에서 일하던 때 촬영장에 가던 장면을 남기고 싶어요. 엄청 특별한 순간은 아니지만, 일을 하면서 처음 느꼈던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스크랩의 제목은 ‘설렘', 배경음악은 ‘a winter story(러브레터 OST)’로 정하고 싶어요. 음악은 당시 작업한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골랐어요.
한 겨울날, 새벽 콜 시간에 맞춰 촬영 장소인 63빌딩 아쿠아리움으로 가던 길이었어요. 전날 새벽까지 촬영하고, 몇 시간 못 자고 다시 나와 한강을 따라 걷는데 그 길이 너무 행복했어요. 해가 막 뜨려던 시점이었는데 피곤함도 잊은 채 기분이 좋았죠.
어떤 특별한 날도 아니었지만, 하는 일에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고 깨달은 순간이었어요. 아직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지금 촬영장으로 향하는 저의 모습이 그저 좋게 느껴졌죠. 그래서 이 장면을 스크랩해서 저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다고 계속 기억하고 싶어요.
그와 나눈 6시간의 대화는 웃음과 눈물이 공존했습니다. 서로 알고 지낸 지난 7년의 세월을 떠올렸을 때 그는 언제나 한결같은 따뜻함으로 주변에 선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저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에 왈칵 눈물이 났던 이유는 그동안 그에게 받은 편안함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이 지나 몇 가지 추가 자료를 받던 중 그가 우리에게 준 편지 한 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온 마음을 다해 들어준다는 것은 또 다른 위로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돌아와 생각해 보니 위로받은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인터뷰이로 참여하면서 느낀 부분이에요. 두 분이 고심하면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용을 전달해 주는 방식부터 그의 사소한 마음 쓰임까지 우리의 첫 growthscraper로 그와 함께한 것은 역시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