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돌파로 성장의 동력을 만들다
일본 최대 HR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한국 스타트업을 거쳐, 현재는 창업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이상아 님을 만났습니다.
도전과 성장을 거듭하며 커리어 여정을 ‘정면 돌파’해 나가고 있는 이상아 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Scrap1: “인생에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을 돕는 ‘키카이토데아이(キカイトデアイ株式会社)’라는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어요. 2023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언젠가 꼭 해보고 싶던 창업에 도전하게 되었는데요. 사회에 필요한 일이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의 교집합을 찾아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기업을 설립했습니다.
동시에 국내에서 해외 취업 및 진출을 희망하는 구직자와 기업을 위한 온라인 멘토링 서비스 ‘멘트리’ 대표를 맡고 있어요. 경험과 지식을 넓히기 위해 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시점에 인연이 닿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인적자원 회사 ‘리크루트 홀딩스(Recurit Holdings)’에 오래 다녔다고 알고 있어요. 어떤 회사인가요?
리크루팅 홀딩스(이하 리크루트)는 다양한 분야에서 기업과 개인을 매칭시켜 주는 플랫폼 회사에요. 구직, 부동산, 결혼, 자동차, 식당 등 개인이 삶에서 결정을 내릴 때 필요한 여러 정보를 집약해 놓은 매체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1960년대 종이 매체로 시작했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현재는 IT 회사로 거듭난 곳입니다.
리크루트에서는 어떤 일을 했었나요?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리쿠나비’ 서비스 운영 부서에서 B2B 영업, 컨설팅 서비스, 해외 프로젝트 등의 일을 했어요. 대표적으로 해외 인재를 채용하려는 일본 기업과 일본에서 취업하고 싶은 구직자를 매칭 시켜주는 프로젝트와 중간에서 영업을 돕는 판매 대리점의 영업 전략 및 실적 등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일들을 주로 맡았었죠. 리크루트에는 약 8년 정도 다녔어요.
첫 회사로 리크루트를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첫 회사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두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한국에 언제 돌아가게 될지 모르니까 일본에서 일하는 동안은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인지를 살폈던 것 같아요.
마침, 취업 시즌에 여러 회사의 채용 설명회를 참여하던 중 리크루트를 알게 됐어요. 보통 설명회에서 학생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질문하면, 대부분의 회사 담당자는 ‘앞으로 더 큰 프로젝트를 맡고 싶다’, ‘승진하고 싶다’, ‘해외 파견을 나가고 싶다’라는 식의 답변을 했는데요. 리크루트 직원들은 ‘회사를 나가서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 ‘가업을 이어받고 싶다’ 등 현재 회사와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하더라고요.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OOO한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리크루트에서 발전시키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채용 설명회라는 보다 공적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즐겁게, 자유롭게 전할 수 있다는 점에 호감을 느껴 입사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일본 회사에서 외국인 신입 사원으로 일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특별히 힘든 것도 좋았던 것도 없었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 외국인이라고 차별도, 특별대우도 받지 않았거든요. 그보다 스스로 ‘나는 외국인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일본 기업 상대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플랫폼 영업을 하면서 제가 가진 무기를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입사 초반에는 여기서 굳이 이 일을 왜 하고 있나 의구심이 들기도 했고, 한국 기업 상대로 한국어로 영업하면 분명히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죠.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고(웃음) 여기에서 한국어를 전혀 쓰지 않고 성과를 내면 어디에 가더라도 퍼포먼스를 낼 수 있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외국인’ 직원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과 같은 평범한 직원으로 일을 잘 해내겠다고 생각한 뒤로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요.
리크루트에서 경험한 8년이라는 시간은 상아님이 성장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첫 회사인만큼 일하는 태도와 습관,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한 가치관까지 배울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요(웃음).
먼저 스스로 결정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어요. 1~2년 차로 일했을 때도 무엇을 하라고 지시받은 적이 없었어요. 대신 지금 팀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하면 좋다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말해야 했죠. 리크루트에서 일하는 내내 어떤 사안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서 말하고, 말한 걸 행동하고 책임지는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었어요. 이런 경험들이 쌓여 좀 더 주체적으로 일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일했을 때 따라오는 희열도 느끼게 되었고요.
또 인생에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입사 초반에 도쿄에서 2시간 반 떨어진 한 마을에 방문했던 적이 있어요. 다짐육 기계를 생산하는 작은 공장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겠다고 연락을 주신 거예요.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대표로 계시고, 마을 청년이 유일한 직원이었죠. 당시 이렇게 운영되는 회사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만약 나라면 가지 않았을 곳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보게 되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이후에는 대기업에 취업해야 한다는 일종의 정형화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간 너무 편협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봤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이외에도 신규 영업 과정에서 다양한 일터에서 즐겁게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만의 기준으로 만들어놓았던 세상에 보다 열린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커리어뿐만 아니라 상아님의 인생에도 많은 영향을 준 리쿠르트를 떠날 때는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리쿠르트에서는 퇴사를 ‘졸업’한다고 표현해요. 저는 졸업할 때 후련한 마음이 가장 컸어요. 그래서 ‘이건 진짜 졸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간혹 리크루트 선배 중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퇴사한 경우 졸업이 아니라 ‘자퇴’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니까 졸업이라는 건 내가 여기에서 정말 다 배웠으니 이제 나가서 뜻을 펼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거죠.
Scrap2: “일을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리크루트 졸업 후에는 국내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에 합류했어요.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리크루트에 다니면서 ‘일을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을 넘어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실제로 그렇게 일하는 사람을 많이 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관련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미 이러한 비전으로 일하는 팀을 우연히 알게 됐어요. 그게 바로 클래스101이었어요. 사실 리크루트처럼 나와 잘 맞는 회사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걱정도 있었는데, 클래스101의 비전과 성장 단계, 타이밍 등이 모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합류 후에는 신사업 팀에서 해외 사업을 리딩하는 역할로 크리에이터들을 소싱해 클래스를 기획하고 런칭하는 일을 주로 담당했어요. 회사의 비전과 서비스를 일본에 잘 전파하고 싶다는 사명감, 팀으로서 성공하는 경험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죠.
클래스101에서는 어떤 성장을 경험했나요?
리크루트에서는 영업이라는 하나의 직종을 깊게 경험했다면, 클래스101에서는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작은 조직이다 보니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나 부득이하게 공석이 생겼을 때 직접 그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마케팅, PO, 제작 등 여러 직무의 일을 조금씩 접해보며 하나의 서비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 본 것 같아요. 이 과정이 즐겁기도 했고 배운 것도 많아서 가치 있는 시간이었어요.
Scrap3: “사이드 프로젝트를 성장시킨 경험이 본업을 하는 데 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업무 외적으로 도쿄에서 독서 모임을 오래 운영해 오고 계신다고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소소한 계기로 시작하게 됐어요. 2018년도에 새해 목표로 책을 많이 읽고 싶었는데 막상 혼자 하려니 지속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라면 꾸준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페이스북을 통해 같이 책 읽을 사람들을 모집했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반응해 주셨고 일요일 아침마다 오프라인으로 독서 모임을 시작하게 됐어요. 모임을 지속해 운영하다 보니 어느새 좋은 분들이 계속 모이게 되더라고요. 모임 채널인 페이스북 그룹에 560명 정도 가입되어 있고, 지금까지 오프라인 모임에는 약 150명이 참여했어요.
5년 동안 독서 모임을 운영하며 변화도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자유 독서 모임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자연스레 같은 책을 읽어보자는 니즈가 생겨 한 권의 책으로 토의를 해보기도 하고, 글쓰기 모임으로도 발전하게 됐어요. 이 과정에서 함께 책 <오늘도 도쿄로 출근합니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또 여러 취미를 갖고 계신 분들이 모이다 보니 한 명이 마스터가 되어 재즈, 커피, 미술, 영화 모임 등을 진행하며 주제가 점차 확장되더라고요. 함께 모일 수 있는 오프라인 아지트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도서관 컨셉의 공간을 오픈하기도 했는데요. 아쉽게도 코로나 때 유지가 어려워 종료하게 됐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계속 성장시켜 나갈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독서 모임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가 사업에 도전해 보고 싶어 퇴사를 고민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은 리크루트에서 더 배워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렇게 단념하고 나니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컸어요. 큰 뜻을 품고 칼을 뽑으려 했는데 결국 칼을 제대로 뽑아보지 않고 다시 넣은 느낌이랄까요(웃음).
그래서 이런 갈증을 독서 모임에서 해소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모여있는 만큼 하나의 조직으로 생각했을 때 어떤 식으로 모임을 꾸려나가는 것이 좋을지, 다른 독서 모임들과는 어떤 차별화를 만들면 좋을지, 모임이 끝난 후 참여한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는지 등 실제 서비스를 만들어 가듯 여러 질문을 던져보고 함께 운영하는 분들과 이야기하며 모임을 발전시켜 나갔어요.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성장시킨 경험이 본업을 하는 데 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독서 모임에서 앞으로 더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남았나요?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는 모두 코로나 전에 해당해요. 코로나 때 아지트도 없어지고 모임 수도 줄어들면서 이전처럼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은 아니에요. 그래서 지금은 거창한 목표보다는 작게라도 꾸준히 모임을 이어 나가고 싶어요.
Scrap4: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돌파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일하다 번아웃이 찾아올 때 어떻게 극복하는 편인가요?
과거에 쓴 일기와 가족이나 선배가 줬던 메시지를 버리지 않고 모두 갖고 있어요. 그래서 힘이 들 때는 열심히 했던 지난 순간의 흔적을 찾아보는 편이에요. 그때의 내 모습이나 흔적을 보다 보면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새로운 취미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어요. 최근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빠져 축구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선수들이 열심히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희열을 느껴요. 매 경기 감독의 전술과 전략을 짜는 모습도 흥미롭고, 제가 토트넘 팬인데 손흥민 선수의 겸손한 리더십도 귀감이 되고요.
올해 들어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을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치면 햇살이 들어올 때 행복감을 느껴요. 그래서 자기 전에 무조건 깨끗하게 청소하고 자는 편입니다(웃음).
일하면서 어떤 때 성장했다고 느끼는 편인가요?
평소 고민하는 걸 기록으로 남기는 편이에요. 그리고 그걸 자주 꺼내봐요. 과거에 쓴 기록을 다시 읽다 보면 더 이상 고민이 아니게 되거나 이미 해결 되었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낸 거죠. 이럴 때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삶을 돌아봤을 때 특정 장면을 스크랩한다면, 어떤 장면을 남기고 싶나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일본으로 발령이 나면서 저는 한국에 남아있는 것과 아버지를 따라가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비슷한 시점에 학교에서 유럽 연수를 가게 되었는데요. 센강에서 바토무슈 유람선을 타고 에펠탑을 지나는데 탑이 빛나던 순간 같은 반 친구들과 샹젤리제 노래를 크게 불렀어요(웃음). 문득 그 순간 한국에 머무르지 말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일본에 오게 됐고 이후 저의 삶도 많이 바뀌게 되었어요. 스스로 처음 내린 인생의 큰 결정이라는 점에 이 장면을 스크랩하고 싶어요.
커리어 적으로는 리크루트 2년 차로 일하던 때가 떠올라요. 일본에 와서 왜 이렇게 고생하며 일하고 있는지 고민이 컸던 시기였어요. 당시 저의 사수와 원온원을 하게 되었는데요. 유라쿠초에서 긴자로 가는 길에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파르페를 시켜놓고 대화를 나눴죠. 선배는 ‘너는 한국에서 충분히 성과 내며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일본에서 일하고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저를 안타깝게 생각한 것 같았어요.
그 질문을 듣고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자 선배는 답변을 숙제로 주었어요. 덕분에 저는 ‘리쿠르트에서 성장해서 어디서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느끼고 싶다’고 답을 내릴 수 있었어요. 선배 역시 ‘네가 그 자신감을 느낄 수 있도록 내가 최선을 다해 서포트할 테니 잘 성장해 보자’고 이야기 해주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매일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 실천해 나갔어요. 이를테면 ‘오늘 A 고객사를 만나서 OOO한 말을 한다’와 같은 작지만 시도할 수 있는 목표로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배와 나눈 그날의 대화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돌파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커리어 여정에서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