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 Maker로 성장하는 여정

Product Maker로 성장하는 여정

​일본어를 모르는데 일본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낯선 환경에서 어디까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디자이너에서 데이터 분석가를 거쳐 UX 컨설턴트까지. 프로덕트 메이커를 위한 다양한 역할을 해내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장하고 있는 한애리님을 일본 도쿄에서 만났습니다.

growthscraper #4 - IBM Japan 한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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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1: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GREE, 5Rocks, IBM Japan 등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커리어를 쌓아오셨다고요. 지금까지 지나온 커리어 여정을 소개해 주세요.

국내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디자이너로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이후 일본으로 넘어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3~4년 정도 일했죠.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라는 두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의 대표 모바일 게임사인 ‘그리’(GREE)의 프로덕트 매니저(이하 PM)로 전직을 했어요. 당시 담당 프로덕트가 33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어 국가별로 살펴야 할 데이터가 많았는데요. 2주에 한 번 하던 복잡한 데이터 분석을 매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API를 활용해 사용률, 컨버젼, 리텐션 등 여러 수치를 분석할 수 있는 대시보드 형태의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데이터를 다루는 일이 정말 재밌더라고요.

데이터 분석 쪽으로 경험을 더 해보고 싶던 시기에 마침 ‘파이브락스’(5Rocks; 한국 모바일 분석 스타트업으로 2014년 미국 기업 탭조이에 피인수)가 일본 법인을 세우고 관련 역할을 찾고 있어 합류하게 됐어요. 그간 데이터 분석을 전문으로 해온 건 아니다 보니 고객들에게 수치나 대시보드 보는 법을 설명하는 등 데이터 관련 기본적인 업무부터 시작했어요. 동시에 컨설팅이나 콘텐츠 쪽도 다루면서 일본 법인에 필요한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이후 광고 플랫폼 회사에 다니던 전 직장 리더분이 신규 사업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주셔서 이직을 하게 됐고, 신사업으로 엔지니어링, 디자인, 앱 개발 등 여러 업무를 참여해봤어요. 그리고 2018년에 IBM으로 옮겨 Senior Management Consultant로 현재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거쳐온 회사도, 직무도 다양해요. 변화의 신호를 무엇으로 보나요?

단순히 ‘이 분야가 뜰 것 같으니까’, ‘이 회사가 월급을 많이 줄 것 같으니까’와 같은 생각으로 옮긴 적은 없어요. 보통 3년 정도는 한 회사에서 맡은 일을 지속했던 편이에요. 일을 하다 보면 새롭게 보이는 일이 있고, 그 분야를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가 있는데요. 그럴 때 새로운 도전을 선택해 왔어요.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엔지니어링을 할 때도 ‘나는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못 해’가 아니라 ‘애플 제품'처럼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 만든 건데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기본적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웃음). 맨땅에 헤딩인데 옆에 보니 이미 맨땅에 헤딩을 끝낸 사람들이 있는 거에요. 그럼 저도 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이런 생각 때문에 다양한 직무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의 마음가짐과 달리 직무를 전환할 때 현실적인 챌린지는 없었나요?

물론 있었어요. 경력직을 채용할 때는 잘 해낼 것 같은 잠재력보다는 이미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여러 분야에서 조금씩 경험해 봤어도 한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연차가 높아질수록 스페셜리티(Speciality)에 대한 질문이 뒤따랐죠. 그래서 얼마나 잠재력이 있는지 ‘증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지원하는 회사의 서비스나 전략 등을 철저히 분석해서 질문 하나를 하더라도 저만의 시선과 고민의 깊이가 담기도록 준비했어요. 단,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할 수 있다고 포장한 적은 없어요. 이를테면 ‘OO는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부분에 관심이 있어요. 여기서는 △△을 어떻게 하고 있나요?’라는 식의 질문을 많이 했어요. 그럼 보통 상대방이 당황하더라고요. 이런 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 전문가일 줄 몰랐는데 그런 질문을 던지니까요.

직무 전환을 고민하는 분들께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단순히 급여를 올리거나 직무에 대한 전망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바꾸려는 직무가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인지 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전에는 인정받으면서 일했다고 하더라도 직무를 바꾸면 이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고, 더러 무시 당하는 상황도 마주할 수 있어요. 결국 이런 상황을 이기려면 하는 일 자체가 즐거워야 하는 것 같아요. 이를 판단하려면 사전에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보다 작은 시도라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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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2: “좋은 리더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 회사에서 유능한 팀원이 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리더로서 겪는 도전은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인 것 같아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좋은 리더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일을 시키기 위한 관심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죠. 이를 바탕으로 팀원 개개인이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끼는지 파악하고, 일과의 밸런스를 잘 잡아줘야 하는 것 같아요.

일본인은 대체로 ‘Personal space’가 영역 명확한 편이에요. 자칫 잘못 접근하면 상대가 큰 불편함을 느낄 수 있죠.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후배들에게 커피 한 잔을 아무렇지 않게 사줄 수 있잖아요. 반면, 일본 회사에서는 후배들이 빚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민폐를 끼친다고 생각해서 이유 없이 받는 걸 꺼리는 편이에요. 이처럼 직장 내 관계에서도 거리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지금은 해결 방안을 찾으셨나요?

한국은 회사에서 이런 정서가 있고,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부담스러워하지 말라고 설명해요. 정 미안하면 나에게 다시 돌려주지 말고, 후배에게 돌려주라고요. ‘네가 그런 선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지금은 따라 하는 친구들이 조금 늘었어요(웃음). 물론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팀원들도 저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서로의 문화 차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 평상시 오픈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고, 대화를 통해 팀원 개개인을 알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채용 인터뷰도 많이 참여하실 것 같아요.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우선 면접을 볼 때 면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원자 입장에서도 인터뷰를 통해 얻어가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의무는 아니지만, 면접관으로서 지원자의 좋은 점과 보완했으면 하는 점을 전해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일종의 피드백이죠.

피드백을 전달하고 나면 지원자의 반응도 함께 살펴요. 특히 신입사원은 피드백을 무조건 많이 받게 되고, 때로는 부정적인 피드백도 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피드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잘 수용해서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인지 미리 살펴보는 거죠. 이는 결국 커뮤니케이션 역량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커뮤니케이션은 이야기를 듣는 자세도 중요하니까요.

실제로 면접에서 피드백을 전달할 때 단어 하나에도 자세가 바뀌는 지원자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인사이트를 발견하려고 하는 태도가 보여요. 그럼 아무래도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리더로서 팀원의 동기부여를 어떻게 돕고 있나요?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밸런스를 잡아가려고 해요. 그러려면 개개인과 많이 소통하고, 서로 하려는 일에 얼라인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일방적으로 프로젝트를 할당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팀원의 의견을 많이 물어보는 편이에요. ‘어떤 일을 해보고 싶나요?’, ‘이 프로젝트를 하면 이런 점은 좋지만, 이런 점은 힘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면서요.

때로는 결정을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조금이라도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이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불안한지 이야기 나누려고 해요. 그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 제시하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먼저 경험해 본 사람과 만날 수 있게 해준다거나, 1~2개월의 준비기간을 둔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얼라인을 맞추고 일을 시작하면 팀원이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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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3: “Less is More”

SNS 소개 글에 적힌 ‘Less is More’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제가 하는 디지털 관련 업무는 덜어낼수록 심플해진다고 생각해요. ‘Less is More’는 사실 건축가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문장인데요. 건축물의 디자인을 덜어냈을 때 훨씬 더 기능적이고 모던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는 디지털 프로젝트에도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일본에서는 현금을 없애는 ‘캐시리스’(Cashless)가 유행하며 자리 잡았고, 사무실에는 종이 사용이 줄어들면서 ‘페이퍼리스’(Paperless) 문화가 생겨났어요. 디지털 문화가 되면서 우리는 더욱 ‘Less’ 한 시대로 가고 있어요. 이처럼 디지털을 통해서 혁신을 만들고, 그 변화를 통해 사회에 임팩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Less is More’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Less is More’ 외에도 ‘Non Designer, Engineer’라는 문구도 함께 써두었는데요. 저는 좋은 프로덕트를 마켓이나 소셜에 내놓고 싶어요. 다시 말해, 만드는 행위 자체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 프로덕트 디자이너나 엔지니어가 아니라 전달(Delivery)까지 책임진다는 의미를 담아 ‘프로덕트 메이커’라고 부르고 있어요. 서비스나 프로덕트를 만들어서 궁극적으로 사용자에게 전달해야 비로소 메이커의 목적이 달성되는 거죠.

듣고 보니 애리 님의 지난 커리어들이 ‘메이커’로서 모두 연결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네, 맞아요. 언뜻 보면 여러 가지 커리어를 거쳐온 것 같지만,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지는 않았어요. 제가 발이 닿아서 갈 수 있는 곳, 연결되는 곳으로 간 거죠. 만약 자동차를 가지고 있으면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거리로, 아무것도 없으면 뚜벅이로 갈 수 있는 거리 안에서 이동하며 확장해 나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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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4: “오히려 일본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일본에 오기 전까지 일본어를 전혀 못 하셨다고요.

맞아요. 처음 일본에 와서는 구청에서 자원봉사자 할머니들이 가르쳐 주시는 일본어 수업을 듣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부했어요. 그러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다닌 회사 ‘니코니코토오’에서 일본어가 많이 늘었죠. 당시 엔지니어 미팅이 정말 많았는데, 미팅 때마다 기록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보통 처음에 일을 잘 모를 때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전화 받기와 미팅 기록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일부러 시켜달라고 자진해서 손을 들었죠(웃음).

미팅록을 작성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이름’이었어요. 알아듣는 것도, 쓰는 것도 힘든데 동료들의 얼굴을 매칭해 이름을 써야 했어요. 심지어 닉네임을 자주 사용했고, 이름을 부를 때도 줄여서 불렀어요. 모두 외워야 했죠.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조금씩 익숙해질 수 있었고, 결국엔 회사에서 각 구성원의 본명을 한자로 다 적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어요. 동료들도 이를 감동적으로 여기고 고마워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일본어 실력을 갖추기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나요?

일상에서 쓰는 표현이나 단어는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업무와 관련된 용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쓰고 명확하게 표현하려 했어요. 그래서 비즈니스 일본어를 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B2C 분야에서 일할 때 다른 서비스들의 메일링 서비스를 받는 메일 계정을 따로 둘 정도로, 많이 살펴보고 공부했어요. 고객사에 보내는 메일, 고객에게 보내는 광고 메일, 화면상의 작은 버튼에 쓰인 문구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요. 동사는 왜 다른지, 한자는 왜 다른지 디테일한 부분도 알아내려고 했죠. 오히려 일본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못하는 만큼 더 꼼꼼히 봐야 하니까요.

이렇게 공부해 왔기 때문에 지금도 비즈니스 메일이나 UX라이팅에 대해서는 원어민만큼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에서도 관련 컨펌을 오히려 제게 받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일본어를 쓰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UX라이팅 어떤 것 같나요?’라는 식의 질문들을 주로 받죠. 고객사에서도 놀라는 부분이에요(웃음).

그뿐만 아니라 신입사원이나, 저연차 팀원들이 고객사나 외부에 보내는 메일에 대해서도 많이 봐주는 편이에요. 한국어도 마찬가지지만 비즈니스 언어는 평소에 쓰는 언어와는 다르잖아요. 단순히 친절하게 쓰는 것만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전달하려는 바가 잘 표현이 됐는지 피드백 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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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5: “늘 거창하게 지표를 만들어야만 성장이 아니라, 변화가 있다면 곧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MBA도 졸업하셨다고요.

현업도 진짜 바빴을 때라 다들 미쳤다고 그랬었죠(웃음). IBM에 합류한 지 3년 반 정도 되었을 때, 지난 시간을 돌아봤는데 그간 일에 치여 아무런 인풋이 없었더라고요. 이러다가 도태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위기감이 많이 들었죠. 원인을 찾아 보니 평일에는 너무 바빠 주말에는 쓰러져 쉬기만 했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대학원 진학을 통해 인풋을 줄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업과 MBA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처럼 엔지니어링 전공자보다는 경영이나 전략 쪽에 커리어를 둔 분들이 많았어요. 전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공부하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죠. 휴직하거나, 대학원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도 되었고요. 다행히 담당 교수님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분이셨는데, 교수님이 해준 조언들이 큰 도움이 되어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어요. 또 당시 수업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친해진 친구들이 있었는데,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며 어렵게 산 하나를 넘고 있더라고요.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지금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게 당연한 거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죠.

번아웃이 온 적은 없나요?

당연히 번아웃도 오죠. 그럴 땐 사람을 만나는 편이에요. 대신 친구보다는 회사에서 살짝 거리감이 있는 동료나, 고객사 분들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으면서 또 다른 관점에서 조언을 들을 수 있어서 번아웃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주석이 부른 ‘정상을 향한 독주2’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요. 좋아하는 힙합을 위해 뭐든 다 이겨내고 뛰어넘을 거라는 가사가 담겨 있는데, 저 역시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으로 가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지난 과정들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지금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집중해 더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같은 맥락에서 제가 못하는 걸 아쉬워하고 못 하는 부분을 채우려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가진 강점을 더 잘 만들고 단단하게 키우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즉, 남들이 하는 것,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부족한 부분은 받아들이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것과 내가 가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는 거죠.

어떤 순간에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매일 느끼려고 노력해요.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똑같이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비슷한 내용의 제안서라도 복제해서 제안서를 수정하지 않고, 늘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요. ‘제로투원’이죠. 모든 고객사와 프로젝트가 조금씩 다른 포인트가 있거든요. 이를 팔로업하기 위해 작은 변화라도 고민하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저는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할 일 목록(To-do List)을 어제와 다르게 쓰려고 고민하고, 시도하는 것도 성장이라고 봐요. 늘 거창하게 지표를 만들어야만 성장이 아니라, 변화가 있다면 곧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결정할 때 어떤 가치를 가장 중점에 두고 고민하나요?

딱 하나, 선택의 자유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 봐요. 제가 직접 선택할 수 없다면 그걸 핸들링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선택의 자유를 가졌을 때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평소에 노력해야 해요. 항상 자신을 유리한 위치에 둬야 하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뭘 알고 모르는지 명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죠. 그래서 저는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삶을 돌아봤을 때 특정 장면을 스크랩한다면, 어떤 장면을 남기고 싶나요?

대학교 시절이요. 당시 제 전공 말고, 다른 전공의 필수 수업을 모두 들었어요. 빨간색 스니커즈에 빨간색 시계를 차고 늘 경영대, 예술대, 법대 등의 단과대를 옮겨 다니며 전공 수업을 들었으니, 학교에서도 유명했죠(웃음). 학점이 높아서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공부만 하진 않았어요. 수업이 끝나면 열심히 놀기도 했죠. 그저 다양한 분야를 알고 싶어서 여러 전공 수업을 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다양한 수업을 듣는 게 너무 즐거웠고, 매일 성장의 폭을 넓혔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시를 스크랩하고 싶어요.

지금도 일하면서 “빡세게 즐겁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요. 결국 제가 즐겁고 재밌어야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해요. 빡세더라도 즐기자, 즐거워도 빡세자(웃음).

DALL-E로 그린 애리님의 스크랩 장면

스크랩 장면의 BGM으로 애리님이 고른 주석 '정상을 향한 독주 2'